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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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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 사 상
도가사상은 장자에 이르러 완전한 틀을 잡았다. 「정의아」의 발현은 《노자》에 비해 《장자》에 있어 더욱 원숙하고 분명하게 된다. 맹자가 중국 북방문화를 대표하듯이, 장자는 선진시대의 중국 남방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1. 장자, 그 인물과 그 책
장자란 인물에 관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는 《사기.노장신한렬전》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자란 사람은 몽인이고 이름은 주이다. 그는 일찌기 몽지방의 칠원리를 지낸적이 있으며, 양혜왕.제선왕과 동시대인물이다. 그의 학문으로 말하자면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 핵심적 본원은 노자의 말에 귀납한다. 그러므로 그의 저서 십여만언은 대체로 거의 우언이다. (장자자,몽인야,명주.주상위몽칠원리,여양혜왕제선왕동시.기학무소불규,연기요본귀어노자지언.고기저서십여만언.대저솔우언야.)
장자의 생졸년대는 《사기》에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양혜왕.제선왕과 동시대라면 바로 맹자와 동시대일 것이다. 근인 마서륜은 「장자년표」에서 장자의 생졸년대를 B.C.369-286년간으로 고찰하였는데, 즉 주열왕 7년에서 주 왕 29년까지를 말한다. 이 설은 비록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체로 사실과 합치된다고 하겠다. 그래서 장자의 시대문제는 노자의 연대만큼 논쟁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
장자가 노자보다 뒤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근인중에는 이와 반대로 설명하는 이가 있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노자》에는 뒤늦게 나온 단어들이 많다는 데있다. 그러나 노자사상은 장자의 성숙함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기술한 내용에 있어서도 《남화경》1)1) 《남화경》 : 당대에 노자를 조종으로 삼는 도교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 장자는 남화진인이라고 742년에 시호가 추증되고, 이때부터 《장자》도 《남화진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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