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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_계통의_수정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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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世史
I. 영-미 계통의 수정자본주의
가. 프랑스 혁명이 反 봉건적이고 反 귀족적인 혁명(bourgeois revolution)이었다는 해석은 19
세기 이래의 장기간에 걸친 연구사와 방대한 실증적인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해석이다.
그런데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정통적 해석에 대한 이의와 도전이 주로 영-미 계통의 역
사가들로부터 제기되었으며, 그 시작이 영국의 코반이다.
코반은 먼저 프랑스 혁명의 반봉건적인 성격을 부정한다. 그에 의하면 '봉건제도(feudalism)'
는 중세의 사회조직을 서술하기 위하여 만든 술어로서 프랑스 혁명 때에는 토지소유에 입각한 통
치체제로서의 봉건제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두번째로 프랑스 혁명이 부르조아 혁명이라면 그 주체는 혁명적 부르조아지일 것인 바,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혁명기의 두 의회 즉 국민의회와 의원들의 직업을 조
사하였다. 그 결과, 코반은 혁명적 부르조아지의 실체는 결국 관리와 전문직업인계급(a class of
fonctionnaires and professional men)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사실 즉 봉건제도라는 용어의 좁은 해석과 두 혁명의회 의원의 직업분석
을 감안할 때 혁명의 범위와 규모는 현저하게 축소될 수 밖에 없다고 코반은 주장하며 다음과 같
은 그의 해석을 제시한다. 혁명은 위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계속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은 도시의 보다 더 빈곤한 사회층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들은 인플레와 식량
등 공급물자의 부족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그 결과 잠재적인 불안의 원천이 되었는데 정치
적 당파들이 그것을 이용하였다.
이런 코반의 견해에 대해 르페브르는 봉토의 의미는 사라졌으나 이에 관련된 '봉건적 권리
(droits feodaux)'는 완전히 없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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