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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매스미디어의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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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매스미디어의 발전 과정
신문은 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매체이다. 또한, 방송은 채 100년도 되자 않은 매체이지만 오늘날 그 영향력은 신문을 능가하고 있다. 방송의 주요 기능은 오락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 하지만 방송 저널리즘의 중요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신문과 방송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하는 사회적 제도인 만큼 그 역사를 다루는 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1.개화기의 언론(1883-1900년)
우리 나라 신문의 역사는 조보(朝報)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보는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주로 조정의 소식을 필사하여 양반 관료들에게 반포한 것으로, 조선조 초기에서 1895년까지 발행된 일종의 관보이다. 그러나 조보는 오늘날의 신문과는 큰 거리가 있어 현대적 의미의 신문사는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으로 일컬어지는 한성순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성순보는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돼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되기까지 총 41호가 발간된 신문이다. 한성 순보는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가 일본의 신문을 보고 돌아와 만든 것으로, 당시 조선은 일본과의 수호 통상 조약(1876년)을 시발로 미국, 독일, 러시아 등과의 나라들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 문을 열고 있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한성순보는 이른바 개화파들의 개혁 작업의 도구로 구상돼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한성 순보의 운명은 곧 개화파의 운명이기도 했다.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게 되자 이들이 세운 박문국과 신문 시설이 소실되었고 한성순보도 폐간의 운명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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