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국 전쟁맥아더 장군의 재조명
|
|
|
|
<한국 전쟁맥아더 장군의 재조명>
1.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맥아더의 행적
1) 일반명령 1호, 한국의 승전국 지위 박탈
맥아더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점령군 최고 사령관의 위치에 서서 전후 일본의 개혁을 총지휘했다. 그는 또한 38선 이남에 설치되었던 미군정의 정책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한 뒤 일반명령 1호를 발표했다. 일반명령 1호는 일 반적으로 38선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이 불할 점령을 결정한 문서로만 알려졌지만, 한국 인에게 중요한 점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2) 일본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다
맥아더는 일왕이 신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 외에는 전쟁기간 동안 최고 지도자였던 일왕에 게 어떠한 전쟁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물론 점령군 사령부하에서 실시된 전범재판을 통 해서 일부 전범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면죄부를 받은 전범들 또한 많았다. 이로 인해 전 쟁이 끝난 지 12년이 지난 1957년 도조 내각에서 활약했던 1급 전범 기시노부스케가 일 본의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극우 보수 세력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 동아시아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그 하나가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대결구도라면, 다른 하나는 일본의 극우 보수 세력의 정책으로 인한 위기다. 맥아더가 지휘했던 도쿄의 점령군 최고 사령부는 이 두 가지 문제로부터 자 유롭지 못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오늘 맥아더를 평가하는 데서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다.
3)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 10만점, 맥아더가 반환 반대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