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7일 임여신, 이은혜, 김 선, 황현숙, 한도숙, 안숙득, 손진실, 이순길, 김계옥 외에 각도대표 1명씩이 모여 대한여자국민당밧기인대회를 열고 이어 8월 18일 서울시안국동 윤치영댁에서 대한여자국민당을 결성하여 강령 및 정강, 당책등을 통과시키고 당집행부를 구성하였다. 대한여자구민당의 간부진과 강령, 선언, 정강, 당책은 다음과 같다.
부서
위원장 임영신 부위원장 이은혜 김선
총무부장 이 성
활동상황
1945년 12월 28일 영부삼상회의에서 소련의 주장으로 결정된 신탁통치반대운동과 1946년 1월 남북협상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항거반대 데모에 앞장섰다.
1946년 1월 14일 구성된 민주의원의인으로 부당수 김선과 황현숙이 당의 추천을 받아 피선되고 임영신은 민주당원의장비서가 되었다.
1946년 12월 총무부장 박현숙은 남한과도정부입법의원의장에 당추천으로 선임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는 김선,황현숙외 10명이 경향각지에서 당공천입후보자로 선출하였으나 모두 낙선되었다.
1948년 8월 임영신이 남공부장관에, 박현숙이 초대감찰위인회에 의원오르 피명되었다.
1949년 1월 13일 시행된 경북안동군을구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 임영신이 당선되어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1950년 5월 30일 총선거에서도 임영신은 전북금산군에서 국회의원으로 재선되었다.
1952년 5월 부산피난지에서 대한여자국민당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8월 5일에 시행되는 정부통령선거에 대통령후보자로 이승만, 부대통령후보에 임영신으로 결의하고 선거에 임했으나 부대통령선거에서는 낙선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시행된 민의원총선거에서 대한여자국민당출신이며 자유당공천으로 입후보한 김길안이 경북금릉군에서 제3대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55년 10월 8일 을지로여청 빌딩 대강당에서 창당제10주년기념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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