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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과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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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본문요약
선구자 최남선론
현실을 호수의 물에다 비유할 때 지나간 역사는 그 수면 위에 비쳐지는 그림자와 같다. 청명하고 고요한 날 물 위에 비쳐지는 것은 사진이 무색할 만큼 현실적이지만, 바람 불고 궂은 날에 그 수면 위에 비쳐지는 것은 실체와 거리가 멀다. 따라서 그 불규칙하게 일그러진 그림자를 보고 산의 실체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는 흔히 표면에 나타나는 사실보다도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특히 지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우리 근대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 시대의 개인의 행위를 그 표면적 사실에만 의존해서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번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이 시대와 사람에 따라 새롭게 씌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한 예로서 일제 때 한국인으로서 일본군 육군 중장에까지 올라갔던 홍사익(洪思翊)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는 종전 후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전범재판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인물이다. 우리는 그가 당시 조선사람, 특히 평민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갔다는 객관적 사실 때문 그를 일제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조국의 광복을 염원했고 주어진 여건에서는 무모하다고 할 만큼 망명한 독립투사들의 가족을 보살피고 구휼(救恤)하는데 솔선했다. 그리고 그가 최후까지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 일본천황의 「군인칙유(軍人勅諭」가 아니라 대한제국 광무황제의 「군인칙유」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실 민족정기의 입장에서 우리가 매도해야 할 친일파란 조국을 팔고 동족을 괴롭히면서 자신의 부귀와 영리를 취한 자일진대 홍사익 중장에서는 전혀 그러한 사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육당 최남선은 이 홍사익의 경우 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할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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