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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자와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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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영화
일본영화의 시초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일전쟁이 종료되고 19세기가 막을 내리려는 1896년 11월 25일 고베(神戶)의 신코(神港) 클럽에서 다까하시 신지(高橋信治)에 의해 상영된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는 일본 최초의 대중공개 영화상영으로 기록된다. 영화는 5일간 유료로 상영되었으며, ‘니테스코프’ 또는 ‘사진활동목경(寫眞活動目鏡)’, ‘전기작용사진활동’ 이란 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까하시는 미끼 후꾸스께(三木福助)와 공동으로 고베의 린넬상회로부터 이 영화를 구입했으며, 이때 필름의 종류는 10종이었으나 5종을 선별, 매일 한편씩 공개했다. 이후 수입업자들은 다투어 영화기재와 필름들을 수입하기 시작해서 1897년에는 오사카의 난찌(南池) 연무장에서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라프가 상영되었고, 이어 도쿄, 요꼬하마 등지로 확산됨으로써 활동사진의 인기는 날로 그 기세를 더해갔다. 1898년에는 다까하시 야소가 최초로 영사기를 제작했고, 1899년에는 최초의 일본 영화인 <단풍놀이(紅葉狩)>가 일본 솔선활동사진회의 제공으로 가부끼좌에서 공개되었다. 당시 인기배우였던 단쥬로(團十郞)가 주연한 <단풍놀이>는 가부끼의 공연을 찍어 성공한 예로써, 오사까에서는 단쥬로가 병으로 휴연했을 때 이 영화를 관객에게 상영해서 절찬을 받았다. 이후 가부끼 촬영이 유행하게 된다. 1903년에는 비로소 아사쿠사(淺草)에 최초의 영화상설관인 전기관(電氣館)이 설립된다. 신파와 가부끼 공연을 그대로 촬영한 ‘연극실사영화’는 1908년경부터 그 수량이 증가하여 가부끼나 신파연극의 관객이 영화로 옮겨오는 시대가 계속된다. 신파비극은 대체로 등장인물의 동작이 많지 않은 One Shot, One Sequence의 형식으로 촬영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변사의 역할이 중요하여 1913년 당시 영화 설명을 위한 변사는 약 2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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