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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주 수복 전쟁, 공민왕의 북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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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주 수복 전쟁, 공민왕의 북벌
1.정벌지 요동의 심장부 요동성을 찾다
2.요동 장악을 위한 전초 작전, 오녀산성과 팔참 공략
3.이성계와 최정예 고려군
4.공민왕의 자주성회복정책(반원정책, 옛땅 회복, 쌍성총관부 탈환)
5.공민왕이 확보한 북방한계선
6.그뒤 만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몽골 초원에서 바람처럼 일어나 대제국 원을 건설한 몽골.
고려 또한 몽골의 말발굽에 짓밟힌 채 90여 년을 신음했다. 그러나 중국의 정세가 급변하고 원이 쇠퇴하자 고려는 반격을 시작했다.
고려는 1356년 압록강 너머 파사부를 치고 쌍성총관부를 회복한다. 그리고 1370년 여름 올랄산성을 공파하고, 마침내 요성을 공략해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는다. 고구려의 영광을 고려 공민왕이 되살리는 순간이었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만주벌은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진 땅이었다. 고구려 전사들이 넘나들던 드넓은 만주 벌판을 고려말 공민왕이 북벌을 단행하여 수복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다.
★정벌지 요동의 심장부 요동성을 찾다
고려는 건국할 때부터 고구려의 옛땅, 만주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못하다가 고려말에야 공민왕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졌다. 공민왕 때라면 고려가 90년간 원의 지배를 받던 때다. 세계 제국 원에 시달려 고려의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진 당시 공민왕은 마침내 압록강을 넘어 요동을 장악하고 두만강으로 진출하여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았다.
공민왕의 요동 공략을 『고려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려군이 압록강을 건너 요성을 함락했다.
요성은 어디일까 중국 요녕성 요양시가 요동의 심장부였던 요성이다.
수 양제의 100만 대군을 격파한 고구려의 요동성도 바로 요양이다.
사통팔달의 요지인 요양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공민왕은 이곳을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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