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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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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붓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영웅호걸형 선비.
붓으로는 문명 개혁의 고전을 만들었고, 칼로는 썩은 왕조를 도려냈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본관은 봉화(奉化)다. 봉화(奉化) 정씨(鄭氏)는 본래 향리 가문이었으나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鄭云敬·1305∼66) 대에 와서 과거에 급제해 양반 가문으로 발돋움했다. 운경은 형부상서까지 지낸 청렴결백한 관료였다. 정도전은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부실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1396년(태조 5) 명나라가 정도전을 압송해 보내라고 했을 때 나이가 55세가 되어 갈수 없다고 한 것을 보아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태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출생지도 개경의 삼각산(三角山)과 단양(丹陽)의 삼봉이라는 설이 있을 뿐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독서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운경이 경학의 대가인 이곡(李穀)과 친했기 때문에 이 곡의 아들 이색(李穡)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고,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이존오(李存吾)·김구용(金九容)·박의중(朴宜中)·윤소종(尹紹宗)등 훌륭한 학자들과도 사귈 수 있었다.
정도전은 1360년(공민왕 9)에 성균시(成均試), 1362년(공민왕 1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벼슬살이는 순탄하지 않았다. 공민왕이 신돈(辛旽)을 기용하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삼각산 옛집에 은거했으며 이듬해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잇따라 숨을 거둬 영주(榮州)에서 3년간 여묘(廬墓:상제가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살면서 무덤을 지키는 일) 생활을 하며 제자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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