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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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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발전사
역사상 기타족이 처음 나타난 곳이라고 알려진 도시문여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왕국(B.C.3500~B.C.1900)에는 이미 기원정 4500년부터 수메리안 판투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500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수부아드여왕 하프가 나타났다. 수메르에 이어진 바빌로니아나 이웃이집트 문명시대에 오면 네페르가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 악기는 대체로 울림통이 작다. 대신 목이 가늘고 긴 타입에 속해 있었다. 줄감개는 없으며, 줄은 줄 받침 막대의 맨끝에다 끈으로 매놓았던 같다. 의 퉁김은 피크(pick)의 일종인 플렉트럼으로 적은 줄을 뚱겨울렸다. 한편 서양문화의 원천인 그리스에서는 리라와 키타라를 많이 즐겼다. 이 악기들은 기타족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카타라는 명칭만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기타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인들이 기원후 4세기경부터애용했던 악기는 피디큘라로 추정된다. 이것은 줄(현,fedes)에서 라는 뜻을 지녔다. 이 피디큘라는 피둘라에서 비둘라로 비올라로 다시 비우엘라로 변해갔다.
비우엘라는 활로 켜는 플랙트럼으로 치는 것, 그리고 손으로 뚱기는 것등 3종류가 있다. 악기모양은 비슷하고, 뒷판은 평평하다. 짧은 네크를 지녔으며, 줄감개가 뒤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즐은 6코스(겹줄)이나, 5겹줄 또는 7겹줄도 있었다.
기원후 8세기후 무렵 사라센의 스페인침공은 알-우드(Al-ud,나무라는 뜻)와 여기에는 파생된 퀴타라를 도입시켰다. 알-우드는 무어 류트(moorish lute)다. 퀴타라는 울림통 뒷면이 평평한 발현악긷. 이 악기의 이입이 기타의 직접적인 선조가 된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기타가 서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5세기 4코스 기타가 출현한 이후의 일이다. 코스는 겹줄을 말하는데, 당시는 가장 높은음 줄에만 단현(외줄)을 매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겹줄을 매었던 습관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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