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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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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멸망
발해의 멸망
渤海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정세를 보아 추측할 뿐이지 이렇다 할 단정은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면 발해의 멸망에 대한 추정들은 어떠한가
이용범 교수는 渤海의人的 구성요소가 우명공동체의식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취약점을 안고 있어서 계층간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또 군사수의 열세등이 원인이었음을 지적하였고
송기호 교수는 거란 침공이라는 외적 상황과 정치적 내분이라는 내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북한이나 중국내의 조선족 학자들의 견해는 그들의 정치 체재에 걸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의 박시형은 종족과 신분의 모순 등 봉건 관료들 사이에서 문무의 알력(文尊武卑=문존무비)과 봉건 지배 계급의 향락, 가혹한 억압과 착취, 부단한 권력투쟁, 극도의 무능력, 사대주의 등을 들고 있으며
중국 연변대학의 방학봉은 내적으로는 발해 사회의 계급 모순과 통치 계급 내부 모순 투쟁이며 외적으로는 거란의 침입으로 보았다.
위의 모든 국가의 학설에서 거의 모두 지적된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정의를 한다면 그 멸망의 原因(원인)은遠因(원인)과近因(근인)으로 나누어 볼수 있으며 近因은 또다시 外的 요인과 內的 요인으로 구분지어 볼수 있을 것 같다.
遠因(원인)으로 외적 상황을 보면 필연적으로 닥쳐 올 국제 정세를 바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즉 동북아 국제질서의 崩壞(붕괴)다. 天寶亂(천보란)이후 唐朝(당조)의 쇠퇴는 節度使(절도사)의專橫(전횡)과羈遊牧部(기미유목부)들의 독자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자국의 존립마저 감당키 어려운 지경으로 기울어 갔다. 그리하여 唐廷(당정)에朝貢(조공)이라는 事大禮(사대례)로安存(안존)하려던 발해와 같은 나라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채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또 안으로는 건국 초기부터 안고 있었던 국가구성원의 문제와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이익 상충이라는 문제를 갖고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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