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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와 배타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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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와 배타원리
원자 내에 있는 각 전자는 동일한 양자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배타원리(exclusion principle)는 1925년 비정상 제만 효과와 원소의 주기율적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뒤 아주 근본적인 원리로 발전해서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배타원리는 금속의 전자론과 같은 고체물리학부터 초대칭 이론과 같은 고에너지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보편적인 적용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이 배타원리는 물리학의 양심 (Das Gewissen der Physik)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파울리라는 물리학자와 긴밀한 연결을 맺고 있다.
파울리와 상대성 이론
1900년 4월 25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태어난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어릴 때부터 보기 드문 신동이었다. 그는 12세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완전히 이해했으며, 14세에 오일러의 저작을 읽었고, 18세에는 난해하기로 정평이 있었던 푸앵카레의 천체역학에 탐닉하기까지 했다. 1918년 10월 파울리가 뮌헨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당시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해한 학문 분야로 알려져 있었던 일반상대론을 상당한 수준까지 연구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파울리는 대학 초년생으로서 상급학생들이나 신청하는 좀머펠트의 고급세미나에 참가하면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했다. 당시 헤르만 바일(Hermann Weyl)은 전자를 공간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물질로 보고 오늘날 우리가 게이지 변환이라고 부르는 기법을 활용해서 리만 텐서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일하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헤르만 바일이 수학적으로 제안한 이 통일장 이론을 거부했는데, 파울리 역시 바일이 연속체 가설을 바탕으로 관찰할 수도 없는 전자 내부의 구조를 가정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바일의 통일장 이론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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