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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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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점에서 본 ‘妾’
처첩갈등-양반의 처와 첩
1. 조선시대의 처와 첩
첩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유교
처
남편
첩(妾)
노비
노동력
처(妻)의 확고한 위치
조선시대의 부부는 우호적인 관계.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
처(妻) 집안과의 관계 중시.
처(妻) 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동 이익을 얻는 게 더 현실적.
안채
사랑채
조선시대
양반
가옥구조
고전에 형상화 된 처와 첩
善惡처첩
본 조의 발표
현대의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현실을 투영하지만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현실을 소재로 삼는 경우는 드문 것처럼, 고전 작품들도 당대의 현실을 투영하지만 그 당시의 일반적인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고전 작품들에 나타난 처첩 갈등이 조선시대의 모든 처와 첩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일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
2. 사씨남정기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
호: 서포(西浦)
1665년 정시문과에 장원
1671년 암행어사
1672년 동부승지
1679년 예조참의
1683년 공조판서
1685년 홍문관대제학
1686년 지경연사
…
《구운몽》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만필(西浦漫筆)》
《서포집(西浦集)》
《고시선(古詩選)》
『사씨남정기』줄거리
명나라 가정 연간에 금릉 순천부에 살고 있는 유현은 벼슬이 이부시랑 참지정사에 이르고 명망이 조정과 민간에 두루 이르렀으나, 애석하게도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그 뒤 노년에 비로소 한 아들을 얻어 이름을 연수라 하였다. 연수의 나이 15세에 과거에 올라 한림학사가 되었으며, 숙덕(淑德)과 재학(才學)을 갖춘 사씨를 정실로 맞았다. 그러나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후사가 없을 것을 염려하여 한림을 설득하여 교씨를 맞아들였다. 하지만 교씨는 음흉하기 짝이 없어서 사씨를 모함했고, 이에 한림은 사씨를 내쫓았다.
『사씨남정기』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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