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괴를 통해 본 산대놀이의 역사
1. 머리말
강이천(17691801)이가 관극시 〈남성관희자〉에 기록한 산대놀이는 현전하는 별산대놀이의 고형일 개연성 때문에 고전극 연구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리하여 윤광봉,1)1) 윤광봉, 『조선후기의 연희』, 박이정, 1998, 191199쪽.
사진실,2)2) 사진실, 본산대놀이 형성과 대본의 변모양상, 《애오개 본산대놀이 재현이 갖는 의미》(서대문향토연구회․우리마당본산대연구회 주최 애오개본산대놀이의 재구를 위한 학술세미나 유인물), 1997, 2436쪽과 『한국연극사연구』, 태학사, 1997, 358367쪽.
전경욱,3)3) 전경욱, 『한국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115117쪽.
박진태4)4) 박진태, 『한국고전희곡의 역사』, 민속원, 2001, 2628쪽.
는 〈남성관희자〉와 양주별산대놀이를 비교하여 인물(탈)과 놀이마당의 동일성에 근거하여 계통적 선후관계를 밝히려 하였다. 그 결과 대체로 상좌, 노장, 취승(취발이), 유생(샌님), 무부(포도부장), 할미가 일치하는 점에서 상좌놀이, 노장놀이, 취발이놀이, 포도부장놀이, 할미놀이가 18세기 본산대놀이에 이미 성립되었다고 보는 데는 공통된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상좌 다음으로 등장한 당의녀(唐衣女)에 대해서는 사진실은 왜장녀의 전신인 당녀(唐女)로 보고,5)5) 사진실, 앞의 논문, 27쪽 참조.
박진태는 천녀의 농주희로 보고,6)6) 박진태, 앞의 책, 26쪽 참조.
전경욱은 팔선녀로 보는7)7) 전경욱,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의 지역적 소통, 《한국민속극》제37집, 한국민속학회, 2003, 284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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