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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개화기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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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化期의 文學
* 梅泉 黃玹(1855-1910)
전라도 광양군 서석촌의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집안은 7대에 걸쳐 200 여년 동안 벼슬한 인물이 없었다. 29세 되던 1883년 保擧科에 응시하여 초시 첫 장에서 1등으로 뽑혔지만 시험관이 그가 시골출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2등으로 내려놓았다. 그는 이것을 보고 조정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 절실하게 느꼈으므로 더 이상 과거를 치르지 않고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못해 5년 뒤인 1888년 다시 생원회시(生員會試)에 응시하여 장원하였지만 역시 당시의 부정부패와 가렴주구가 심했으므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날 지은 시에서 ‘멀리 고향에서도 장원했다는 소식 들을 걸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한 번 웃음이 천금 값어치는 되리라’고 한 것처럼 부모님을 만족시킨 것만으로도 그의 목표를 다 이뤘기 때문이다. 36세 되던 1890년에는 구례군 만수동에다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서재를 세우고 독서와 학문에 전념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시대를 걱정하는 그의 관심은 언제나 역사적인 현실에 있었다.
그는 1905년 보호조약이 억지로 맺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여러 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통분하다가 [聞變]을 지었다.
한강물이 울먹이고 북악산마저 찡그리거늘
대갓집 벼슬아치들은 옛날 그대로 노니는구나
동포들에게 청하노니 역대의 간신전을 읽어보소
나라 팔아먹은 놈치고 나라 위해 죽은 자가 없었다오.
나라의 주권이 빼앗기게 되면 정권을 담당한 자들이 가장 크게 책임져야하는데, 정작 벼슬아치들은 유유하게 지내고 있음을 한탄하였다. 그러다가 1910년 [절명시] 4수를 짓고 목숨을 끊었는데,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짐승도 슬피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버렸네
가을등불 아래서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보니
인간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어렵구나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일에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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