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라는 말은 1937년 유종열(야나기 무네요시)이 「공예적 회화」 라는 글을 통해 “민중에서 태어나 민중을 위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쓰여진 그림을 민화라고 부르자” 는 주장에서 공식적으로 천명되었다. 링컨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의를 연상케 하는 이 정의는 야나기의 한국사랑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와 이미 세계에 알려진 이름이라는 일종의 기득권적인 관점에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그대로 구사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화를 보면서에서 미의 극치라고 일컬은 어해도는 연꽃과 게가 한 화면에 보이고 복숭아 가지 사이로 물고기가 노니는 그림이었고 원근법이 거꾸로 표현된 책거리 그림이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상찬하는 사람에게 보이나니 그것이 야나기가 바라던 아름다움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어찌 그런 행태가 가능하겠느냐 마는 그림에서 그것이 가능했고, 일본인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다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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