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담론이 그야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노골적인 병탄론이나 무력
통합론은 합리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일단 제외해보자. 또한 일
방이 타방의 존재를 물리적으로 해소하는 흡수통일도 불가하다는 것이 오
늘날 통일 논의의 표준적 흐름인 것처럼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
면 현존하는 절대 대다수의 통일담론은 넓은 의미의 국가 수렴이론으로 귀
착되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남과 북 공히 장단점이 있으므로 그 장점들
은 살리고 단점들은 고치는 방향으로 양자를 수렴해서 보다 고차적 인 통일
국가의 모습을 형상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수렴이론에는 치명적 맹점이 존재한
다. 즉 남북의 헌법에 수렴적 접합의 여지가 철학적으로 존재하는가의 질
문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통일헌법 제정은 통일 과
정이 제도적으로 완결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논의의 순서와 심급이
상이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나의 의
문은 불투명한 미래의 통일헌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1948년부터 지금까
지의 남북 현행 헌법에 어떤 철학적 접점이 발견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축적 위에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