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1일 김대중, 윤보선을 포함한 각계의 지도자들이 ‘민주 구국 선언’을 선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민주 구국 선언’은 민주주의 확립과 경제 구조의 개선, 통일의 적극 추진 등을 구호로 내세웠다. 재야에 의한 통일 구호는 유신 체제하에서 이때 처음 제기되었다. 민주주의의 내용도 정치적 자유와 헌정 질서의 회복에 사회적・배분적 정의가 덧붙여져 보다 확대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보였던 민중 민주주의적인 요구들의 씨앗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유신 전반에 걸쳐서 기본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추구에 국한되어 있었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도시 빈민들의 생활 환경에 대한 자각과 개혁의 요구가 학생・재야의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였으나, 그러한 사회・경제적 개혁의 요구가 자유 민주주의의 틀을 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립과 시민적 권리의 회복이 주요 사회 경제적 개혁보다 민주화 운동에서 더 우선 강조되었다. 유신 체제의 모순 중 정치적 독재가 국민을 짓누르는 가장 큰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이념적으로 볼 때에도 당시 학생이나 재야 세력들이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체계적인 이념이나 방책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이념과 방책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9년 3월 1일에는 이 기구가 확대되어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을 공동 의장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을 위한 국민 연합’(국민 연합)이 결성되어 민주화 운동에 또 다른 결속을 이루었다. 이때는 유신의 모순이 누적되어 말기에 접어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