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나워의 서방통합정책과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독일 통일
1. 아데나워의 서방통합정책
서독의 초대 수상은 콘라드 아데나워라는 73세의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나, 아데나워의 독일부흥에 대한 신념은 누구 못지 않았다. 전쟁의 결과, 독일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국토는 승전국들에 의해 분할점령되었으며, 주권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 국민들은 자신감을 잃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한, 소련이 점령하고 있던 동부 독일은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아데나워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수상으로 취임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웃 국가들과 관계개선이 시급한 문제였다. 특히 프랑스와 화해가 독일의 재건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프랑스와 화해, 이웃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위해 아데나워는 적극적으로 서유럽 통합에 앞장서게 된다.
아데나우어가 서유럽통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이유는 명확하다. 독일이 나치범죄의 멍에를 벗고 이웃 국가들의 불신과 두려움을 불식시키면서 번영하기 위해서, 그리고 군사적 피점령국의 상태에서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주권국가로 조속한 회복은 서유럽에 굳건하게 독일이 통합됨으로써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럼으로써만이 독일의 통일이 가능하다고 그는 믿었다. 즉, 유럽통합을 통해 독일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독일통일은 단지 비운의 역사가 반복될 따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독일의 극단적인 민족주의 전통을 유럽이념으로 대체하고, 그 위에서 독일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견해였다. 서독에 주어지지 않고 유보된 주권은 회복될 민족국가를 위해 되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서유럽에 이관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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