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500년의 전통 성곽도시가 좋은 의미에서 새로운 도시로, 나쁜 의미에서는 전통도시파괴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의 일로 우리의 정책과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제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다.
19세기 말의 일로 대원군의 쇄국주의는 선진열강의 수요외교에 일체 응하지 아니하였으나 1876년 일제의 강요된 강화도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1883년부터 7개국과 차례로 통상조약을 1886년까지 4년간에 걸쳐 맺게 되었다. 불평등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제의 한반도 진출은 대륙경영까지 포함되어 이 땅에 경제적 침략이 시도되었다.
한국에 있어서 일제의 침략이 초기에는 적극화되지 않았다. 처음에 일본상인들은 정착적인 사업은 기도하지 않은 채 단시일내에 일확천금하고 본국으로 귀환하여 영주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이 승리로 끝남에 따라 일본의 토지점탈과 한국내 영주자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강화도조약에는 2개항구를 개항하고 개항지에서의 토지 및 가옥임차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항지에서 거유지역을 설정하고 토지와 가옥을 임차소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