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한국은 서로 대립하는 이해 당사자들의 국제적 싸움터가 되었고 세계제패를 위해 다투고 있는 양대 열강의 아시아에게서의 전선이 되었다.
이전에는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목적이 점점 양립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한국에 대한 최초의 의도는 점점 뒤로 사라지게 되고 한국의 자유를 확립시키겠다는 궁극의 목적은 두 경쟁자의 각각의 자기 목적수행 과정 중 옆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이 두 나라 미소의 의견 대립으로 인하여 결국 남북이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게 된 과정과 배경을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문제, 미소공동위원회, UN과의 관계들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 모스크바 3상회의
한국문제에 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은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논리가 그대로 한반도에 반영된 것을 보여 주는 가장 구체적인 사례중의 하나다.
미국의 대한 정책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그러했듯이 한반도의 현상을 타파하려 하지 않았고 점령지역인 한반도 이남지역 만큼은 그들의 세력권내에 두고자 햇다. 그것의 구체적 결과가 바로 모스크바 3상회담에서 한국을 신탁통치하에 두자고 한 결정이다.
1943년 12월 27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되었고 그 기본정신은 한반도의 통일 정부 수립에 있는 것이었다.
(잠정적인 임시정부하에서 신탁통치를 통한 통일 정부수립)
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의 기본정신은 해방 정국의 한국 현대사에서 외면되고 신탁통치 문제만을 부각시켜 찬탁,반탁만의 논리로 일관된 면이 있다. 그러면 모스크바 3상회의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연합국들의 가장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공식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미국,영국,소련,이 3개국 외상회담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처리는 미국안의 제출과 소련측의 미국안에 대한 수정제안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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