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의 북한에서의 세력은 민족주의자로서 인민들의 신망을 두텁게 얻고 있는 조만식선생과 빨치산 출신의 소련장교 김일성이 국외파 공산주의 그리고 국내파 공산주의자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2. 북한 권력 구조에 대한 소련의 최초 구상
소련측의 권력구성 복안의 첫번째는 조만식을 대통령으로 김일성을 군부책임자의 안을 생각하기도 했다. 조만식 선생은 민족주의 세력과 인민들로부터 얻고 있는 신망이 높았기 때문에 그리고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를 표면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그들의 전략과도 맞물려 고상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당시 소련의 상부지시는 김일성에 대한 특별한 지시는 없고 빨치산 그룹의 활동을 관찰해보고 이 중에서 지도자를 골라보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그러나 소련의 북한에 대해 실시한 정책은 2,3중의 다중구조였다. 군사적 점령과 군정실시라는 현실적 목표, 그리고 북한을 소비에트화하는 내면적 목표였다. 따라서 소련은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협력을 필요로 했고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소련의 ‘비밀스런 대안’이 되었다.
3. 김일성의 등장과 정권 장악 과정
김일성은 해방 한달쯤 후인 45년 9월 19일 오전, 원산항 앞바다에 소련군함 1척을 타고 입북했다. 김일성은 입북당시 나이와 이름을 속였다. 원산에 들어온 김일성은 소련의 전폭적인 후원속에 지방조직에 착수하면서 소련과 직접 연결되는 빨치산의 하부조직을 뻗어간다. 김은 지방에 내려가는 ‘빨치산’들에게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