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이후 19세기 유렵의 변화상
1. 비인체제의 성립과 왕정복고
25년간에 걸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가 끝나고, 이른바 복고왕정시대가 도래한다. 비인회의는 프랑스에 대한 가혹한 책임추궁을 완화하고 몇몇 영토상의 변동을 승인하였으며, 전 유럽에서 혁명전의 지배를 복원한다. 1815-48년 기간에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군주들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였으며, 특히 중동부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군대와 행정에서 전통적 지배권을 유지하였다.
복고왕정들은 혁명 전 구조의 신성함을 언급하였지만, 실제로는 최소한 나폴레옹 체제의 몇몇 특성들에 순응하고자 하였다. 중앙정부를 합리화하고 근대화한 나폴레옹의 여러 제도들은 흔히 그대로 존속하거나 모사되었으나 자유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연방의 몇몇 국가들은 제한적이나마 의회와 입헌주의를 실험하였다. 헌법은 최소한의 시민적 자유를 허용하였고, 극히 제한된 선거권에 기초한 의회는 왕실재정에 대해 어느정도 통제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 헌법들은 지배자의 재가를 받은 것이었고, 스스로 자신의 특권을 제약한 지배자는 없었다. 전통적 권위에 대한 존경을 강요하고 자유주의적 이념을 질식시키기 위하여 보수적 지배 엘리뜨는 검열, 비밀경찰, 군대에 의존하였다. 나아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영국은 비인회의에서 확정된 영토와 세력균형을 보존하기 위하여 행동통일을 약속하였고, 전비배상을 완료한 프랑스를 포함시켜 이른바 유럽의 협조체제를 성립시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