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하면 누구나 “아!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 하고 떠올릴 정도로 한국독립당과 김구 선생님과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부터 한국독립당을 백범 김구 선생 사상과 연결하여 쓰려고 하였고 이 생각은 중경 임시정부의 선전부장인 엄항섭(嚴恒燮)의 설명을 본 순간 굳어졌다.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와의 관계는 깊으며 김구 씨도 당원의 한사람이다.”
따라서 한국독립당의 통일 정책을 분석하는데는 임시정부와 ‘김구’의 활동과 사상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즉 한국독립당의 성격은 임시정부와 일심동체였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2. 한국독립당의 통일정책
임정요인들이 귀국하기 전에 국내에는 이미 공산당과 한국민주당이 터전을 닦아 놓고 있어 한국독립당이 설 입지가 부족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한국독립당은 귀환하기 전에 1945년 8월 28일 제 5차 임시 대표 회의에서 “임시정부의 정권을 전 민족의 의사에 의하여 조직되는 정식 정부에 교환케 하자.”라는 결의를 하였다. 즉 임시정부가 정식 정부 수립 전까지 과도적인 정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이는 임정을 하나의 정식 정부로 만든다는 자신의 정책과 상충되어 무시되고 말았다.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장개석 정부에게 부탁하기도 하였으나 미군정의 부인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김구는 귀국하였을 때 임정이 “전 민족의 총의로 조직된 정부였고 동시에 왜적의 조선 통치에 대한 유일한 적대적 존재”였음을 강조하였고 임정 주도하에 각 정파가 통일할 것을 역설하였다. 하지만 1946년에 국민당, 신한 민족당이 흡수되었을 뿐, 정작 중요한 당인 공산당, 한국민주당 모두 비난하고 나서서 임정 주도로 통일 정부를 수립해 보려는 한국독립당의 전략은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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