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대한 해석에 자족하는 전래의 철학들과는 달리, 맑스주의 철학의 혁명성은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 철학은 하룻밤사이에 철현한 것은 아니다. 독일 고전철학의 수제자였던 맑스는 그것을 계승함과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철학혁명을 준비해갔다. 이러한 계승과 부정의 과정이 바로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의 이행’, ‘혁명적 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의 내용이다. 서설은 원래 헤겔법철학 비판이라는 보다 포괄적인 저작의 서문으로 쓰여진 글로서, 1844년 2월 말 「독불연보」 제 1호에 유태인 문제에 관하여와 함께 발표되었다.
서설 이전의 맑스의 주요한 활동은 「라인신문」에서의 활동으로 대표될 수 있다. 「라인신문」은 1842년부터 1843년 4월경까지 발간된 신문으로 독일의 반정부적 민주주의자들의 주요거점이었다. 주요논객들은 바우어 형제를 비롯한 청년헤겔파들이었다. 「라인신문」에서의 활동은 맑스를 혁명적 민주주의자로 단련시켰다. 그러나 맑스는 「라인신문」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삼림법의 경우에서 국가가 민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자들의 사적 이해만을 옹호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자신이 이러한 사적 이해에 너무나 무지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맑스는 「라인신문」이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서 폐간된 이후 정치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연구실로 후퇴”하게 된다. 이에 대한 맑스자신의 설명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