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받는 관료
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이리 카자흐 자치주 이령시 주변은 지난날 청왕조의 이리 장군의 주둔지였다. 그곳은 중국의 서북 끝이라 청왕조에서는 종종 징벌적인 인사로 실책이 있는 관리를 이 지방에 부임 시켰다. 임칙서 역시 아편전쟁의 책임을 추궁 받아 이리에 좌천되었다.
이령시 가까이에 인공의 큰 수로가 있는데 이것도 임칙서가 만든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곳에 부임한 그의 임무는 개간 사업을 감독하는 것이었으므로 개간의 기본인 관개용 수로를 만드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 그 고장에서의 신기한 모든 것이 모든 임칙서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임칙서라는 인물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강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편문제로 조정의 일방적인 의향에 의해 좌천된 임칙서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있었을 게 틀림없다.
임칙서라고 하면 아편전쟁이 연상된다. 그만큼 그의 이름은 아편전쟁과 강하게 결부 되어 있다. 이 같은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그의 존재가 빛날 수 있었지만, 평온무사한 시대에도 뛰어난 실무 관료로서 그는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아편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청왕조의 당시 황제 도광제는 각지의 총독, 순무, 장군들에게 그 대책을 하문했다. 가장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을 흠차대신에 임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셈이었다. 해결책의 수석이 당시 호광 총독이었던 임칙서였다.
임칙서는 무창에서 북경으로 가 입궐하여 흠차대신에 임명되어 문제가 일어난 광동으로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