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대일점령정책과 전쟁 책임문제, 그 결과
목 차
1. 대일 점령 정책
1.1 초기 : 비군사화와 민주화(1945~1947년)
1.2 중반기 : 점령정책의 변환(1947~1950년)
1.3 후반기 : 미.일 타협과 점령의 끝(1950~1952년)
2. 대일 점령과 전쟁 책임 문제
2.1 천황의 전쟁 책임 문제
2.2 헌법 제9조 문제
2.3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 문제
3. 대일점령정책의 결과
3.1 역사교과서 문제
3.2 전쟁 사과 문제
3.3 전범, 전쟁 협력자 문제
4.참고문헌
1. 대일 점령 정책
1.1 초기 : 비군사화와 민주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합군에게 항복한다고 발표
1945년 9월부터 도착하기 시작한 점령군은 비군사화와 민주화라는 전략 아래 일본을 개혁.
일본의 점령과 개혁을 위해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SCAP) 가 설치.
처음으로 외국인들에게 명령을 받게 된 일본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 앞에 서게 됨.
(1) 비군사화
일본의 재무장을 막기 위해 육군과 해군을 즉각 해산. 군대 해산과 송환은 1948년말이 돼서야 완료.
전제적 천황제의 해체. 1945년 12월 29일 GHQ의 ‘천황제의 지주’ 파괴 선언. 1946년 1월 1일 천황은 스스로 신격성을 부인하는 조서(천황의 인간선언)을 발표.
전범용의자에 대한 체포가 이루어짐. 도조 히데키 등 39명을 ‘평화에 어긋난 죄(A급 전범)’ 의 용의로 체포. 동시에 황족 59명도 체포.
(1) 비군사화
농지개혁이 이루어짐. 고율 현물 소작료에 의해 가난한 소작 농민은 저임금 노동자나 사병의 공급윈이 됨.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의 비율 감소.
경제 개혁. 배상정책과 재벌해체, 독점금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음.
(2)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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