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삼국사기의 편찬배경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인종의 명으로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김부식이 그 편찬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그때 김부식은 정계은퇴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인종이 대사면령을 발포해서 이자겸의 정적인 윤언이가 풀려나게 되었기 때문에 그가 정계로 복귀하게 되면 보복을 당할 것이라 여긴 김부식이 발 빠르게 뒤로 빠진 거죠. 이런 장면들을 보면 참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약삭빠름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할 일 없는 김부식이 불쌍해서 인종은 은퇴한 1등공신에 대한 예우로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역사서의 편찬을 맡기게 됩니다. 실제로 김부식이 크게 한일은 없는 거죠. 예전부터 역사서 편찬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지 책임자의 역할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최산보를 비롯한 8명의 참고와 김충효등 2명의 관구가 진삼국사기표와 머리말, 논찬, 사료의선택, 인물의평가같은 몇가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료발췌 및 정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대부분의 힘든일은 아랫사람 다 시킨거죠. 김부식이 직접적으로 관여했을것으로 보이는 임금에게 보고하는 보고서격인〈진삼국사기표〉에는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 고 하여 편찬 동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삼국사기가 편찬된 실제적인 동기로 정치적인 목적도 있는데요. 삼국사기의 편찬은 그 당시 만연했던 고려의 민족주의 운동을 희석시키기 위한 사업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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