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위해
1. 장애인을 배제, 격리, 억압하는 패러다임과 기계장치들
인류역사에서 장애인의 삶이 언제는 좋았으랴만 (사실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 중증장애인이 사회에 남긴 흔적을 찾기란 외계인의 지문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계급사회의 발전과정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제와 억압은 더욱 구조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 단적인 증거로 수용시설을 중심으로 한 감금과 격리 시스템,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을 전후하여 번성했었던 우생학(優生學)과 장애인 말살정책 따위를 들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제국주의 전쟁은 산재노동자와 전쟁부상자를 포함한 장애인, 고아, 경쟁사회에서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을 대량으로 양산했고, 격화되는 계급투쟁 속에서 국가로서는 사회통합, 즉 국가기구와 체제의 유지를 위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대응을 필요로 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복지시스템들과 사회복지시설들이 만들어졌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더욱 불행하게시리, 그나마 국가가 아니라 종교집단을 비롯한 민간차원의 자선과 구제시스템과 민간의 복지시설들이 만들어졌고, 이후 점차 이들이 국가로부터 공인받고 예산을 지원받는 형태로 공식화되었다. 국가의 예산으로 집행되는 공공의 사회복지가 사적(私的)시장구조를 통해 전달되는 기괴한 형태가 구조화된 것이다.
한국과 같은 극악한 형태가 아니라도, 장애인을 치료와 재활의 대상으로,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전통적 사회복지 개념은 본질적으로 장애인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것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기능손상, 불능, 고통, 빈곤, 불행, 의존 따위의 개념들과 같은 뜻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장애인의 삶의 방향은 전문가나 주변사람들이 ‘재활(rehabilitation)’이라는 가치관으로 짜맞추어놓은 프로그램 위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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