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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갯벌 간척과 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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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갯벌 간척과 매립
1. 들어가며
갯벌의 간척․매립은 고려시대부터 진행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목적은 식량확보를 위한 농경지 마련이었다. 우리나라 전체를 살펴보았을 때 60년대 이전까지의 간척․매립사업은 많았으나 규모면에 있어서 소규모로 진행되어 왔다. 이후 간척․매립사업의 수는 줄어들었으나 대규모의 간척․매립사업들이 진행되면서 가장 많은 갯벌의 훼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인천연안의 경우 광활하게 드러나는 갯벌은 간척․매립을 위한 입지로 적당하게 여겨져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진행되어 왔다.
2. 강화도 남단 갯벌 및 해안 습지의 특징과 변화
강화군은 한강과 예성강의 하구에 있는 도서지역으로, 우리나라 4대 섬의 하나인 강화도를 비롯하여 교동도, 석모도 등 큰 섬과 주문도, 볼음도 등 1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척이 시작되기 전까지 강화지역에는 강화도, 고가도, 황산도, 송가도, 석모도, 매음도, 교동도 등 수 많은 섬들이 있었고, 넓은 갯벌이 섬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때부터 진행된 간척에 의해 현재 약 130㎢의 간척용지가 생겼으며 이는 지역 총면적의 1/3에 해당된다.
3. 고려 말의 간척사업
강화지역은 농토가 적어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 외에 염업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원종 11년(1232년) 몽고군의 침입을 피하여 강화천도를 단행한 고려 조정은 병란의 장기화와 급증한 인구 부양을 위해 막대한 양의 식량과 연료 등의 생필품 공급을 필요로 하였으며, 이의 조달을 위하여 해안 저습지의 간척이 이루어 졌다.
망월포(望月浦)의 축조는 삼거천 갯골을 막은 대표적인 방조제 겸 해안방벽의 하나로 이와 같은 해안방벽의 축조로 강화 지역에는 넓은 간척지가 나타나게 되었다.
4. 조선 후기의 간척사업
임진왜란 이후 강화지역이 전략요지로 검토되면서 동시에 간척사업이 진행되었다. 청의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강화도 해안에는 53개소의 돈대(墩臺)가 설치되고 이들을 연결하는 성벽이 해안선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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