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그에 대한 자본가들의 대응도 한층 세련되고 고도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노동탄압정책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은 절감할 수 있으나 결코 ‘세련되지’는 않은 것 같다.
6공화국이 보여준 노동탄압의 형태는 공격의 내용이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졌다는 점에서는 5공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었지만, 일면 공격의 방식에서는 폭력성으로 일관하고 있어 여전히 ‘덜 세련된’ 그대로다. 그리고 이를 입증할 만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노협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990년 5월까지 구속노동자수는 2백94명에 이르렀다. 특히 4월 28일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이 시작된 이후 구속된 노동자만 해도 무려 1백44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 6공 정권의 노동정책
6공 정권의 노동정책은 그 특성이나 시기를 기준으로 볼 때 크게 87년 7월부터 88년 12월까지, 88년 12월부터 민자당 출범 이전까지 그리고 민자당 출범 이후의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단계인 88년 12월까지의 시기를 살펴보자. 이 시기는 불안하게 출발한 6공정권이 ‘민주적인 외양’으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노동정책도 이러한 정권의 필요에 의해 규정된다.
파쇼통치 기반의 미정비 그리고 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진출이 맞물리면서 노동정책에서는 부분적인 개량과 양보가 이루어지고 형식적으로나마 노사자율의 원칙이 고수되는 듯했다. 탄압의 양상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형태를 띠었다.
결과적으로야 유명무실하게 되었지만 일단 노동법을 개정한 것에서도 나타나듯이 선제적인 양보를 통해 노동운동의 예봉을 누그러뜨리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이러한 개량과 양보는 경제적으로 3저 호황이라는 호조건 속에서 자본이 막대한 이윤을 축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에 이어 민주노조운동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상황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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