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은 자신의 정치사상의 기초가 되는 실사구시 개념을 통해 마르크시즘, 레닌이즘, 모택동 사상의 구성 인자인 유물론적 변증법 사관, 실천론, 모순론, 계급투쟁론 및 제국주의 전쟁론을 재해석함으로써 지난날의 이들 고정관념으로부터 사상 해방을 시도하는 한편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이념적 당위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념 재정립은 정통적인 이데올로기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의 차원이며, 이념적으로는 좌 와 우 가 아닌 중도 노선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2. 등소평의 정치 철학
등소평의 정치 리더십의 진정한 가치는 비혁명적 정책으로 사회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를 파급시켰으며, 그러한 변화가 자신의 정치적 권위와 맞물리면서 그의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상승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의 무리한 점을 보여주는 일화로는 당시 등소평은 부수상 겸 당총서기 직책에 있었다. 이 때 하북성에서 1묘에서 벼 1만근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는 믿기 어려운 보고가 올라왔다. 즉 100평방미터 넓이의 논에서 벼 6000㎏을 생산했다는 황당무계한 보고였다. 당시 세계최고기록은 1묘에 1500㎏이었다. 당시 식량난에 허덕이던 중국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기에 등소평은 현지로 내려가 확인을 하였다. 논은 분명히 큰 이삭을 달고, 누렇게 잘 익은 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발을 옮겨 놓을 틈조차 없이... 그러나 의심스러운 것은 그렇게 빽빽이 자랐는데 어떻게 햇빛을 고루 받았느냐는 것이었다. 나중에 비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이러했다. 하도 생산량을 높이라고 몰아치니까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모두 15묘의 논에서 익은 벼를 조금씩 그 논으로 옮겨 심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