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와 영예를 버리고 스물 아홉에 출가하여 뼈를 깎는 육 년 간의 고행 끝에 마침내 정각에 든 붓다. 법열의 기쁨에서 깨어나 입멸할 때까지 붓다는 오직 중생제도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바라문을 위시한 기존교단과 외도들의 방해와 음모가 수없이 자행됐고, 사촌동생 데바닷타의 배신과 석가족의 멸망, 수제자 사리푸타와 목갈라나 그리고 아들이기도 했던 라훌라의 죽음 등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붓다의 자비행은 한치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결과 마가다와 코살라 같은 대국을 비롯한 중인도의 왕들과 귀족, 천민에 구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붓다에게 귀의함으로써 불교는 더욱 더 퍼져 나갔다.
이제 이 지상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인 듯 했다. 떠날 때라고 생각한 붓다는 입멸할 곳을 찾아 바이살리를 뒤로 하고 쿠시나가라에 있는 히란냐바티강에 도착했다. 삼 개월이나 걸린 여정이었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날 재가신자가 바친 상한 음식으로 인해 매우 위독한 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붓다는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가르침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붓다는 바른 진리를 구하고자 노구를 이끌고 찾아온 수밧타라는 바라문에게 팔정도의 법을 설함으로써 그가 깨달음을 얻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을 향해 최후의 설법을 행한 다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붓다의 입적을 기록한 열반경과 전기를 보면 유언의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도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라. 나는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헤아릴 수 없이 좋은 일도 방일하지 않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이다. 일체 만물에 항상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것이 여래의 최후의 말이다.”〈장아함경長阿含經권제4 제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