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접어들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폐쇄적인 통일론에 맞서 ‘남북교류와 공존에 기반한 평화통일론’과 ‘4대국 평화보장론’을 제기한 사람은 야당 지도자 김대중씨였다. 김대중씨는 1970년 10월 6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지명 기자회견에서 최초로 이같은 통일론을 제기하고, 이를 1971년 3월 24일 통일정책 선거공약으로 공식화하는 한편 동년 4월 18일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에서 재천명함으로써 그의 독보적인 통일론 여정의 첫 발을 내딛는다.
그의 초기 통일구상은 대통령선거 낙선 이후 더욱 구체성을 띤 내용으로 확대돼, 1972년 2월 24일 일본 도쿄(東京) 외신기자클럽에서 밝힌 ‘3단계 통일정책’으로 발전한다. 이 3단계 통일정책은 그 해 7월 13일 서울 외신기자클럽에서 재천명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3단계 통일정책을 평화적 공존․평화적 교류․평화적 통일의 3단계로 구분해 밝혔다.
그는 평화적 공존을 국내적 공존과 국제적 공존으로 나누고 국내적 공존의 방안으로 남북간의 부전(不戰)선언․평화협정․감시기구의 확대 개편을 주장했다. 국제적 공존 방식과 시기와 관련해서는 미국․소련․중국․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아시아에 있어서의 4대국에 의한 불가침조약 기운이 성숙할 때라고 밝혔다. 평화적 교류에 대해서는 당시 진행되던 적십자 회담외에 기자․문화․예술․학문․체육 교류 및 방송의 상호 청취, 그리고 경제적 교류를 주장했다. 평화적 통일의 원칙은 평화․자유․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통일이지만, 유엔의 위상 변화를 고려하여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안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