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천제의 성립배경
고려 후기의 농업 생산력의 발전으로 중소 지주층의 경제적 자립도가 크게 증대되었으며, 이와 같은 경제적 기반을 발판으로 하고 성리학적 이념으로 무장된 새로운 지식인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소 지주계층이 조선왕조 개국의 핵심 세력으로서 사회 지배층으로 대두된 신진 사대부들이다. 이들은 이전 시대 보다 강력한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를 지향했다. 또한 고려말의 평민계층은 자신들의 권리를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신진 사대부의 보다 합리적이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의 구축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확고한 신분제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평민층 역시 그들의 권리를 신장할 수 있는 새. 로운 신분제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비노비자의 등질화라는 고려 후기의 사회 적 분위기를 기반으로 능력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신분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비노비자들은 일률적으로 양인으로 간주되었으며 양․천미변자의 종양, 종부위양법의 실시와 같은 과감한 양인 확대 정책이 실시되기도 했다. 동시에 천인 신분은 부계로만 이어졌고 모계로는 이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따라 노비만을 천인으로 간주하는 양․천 2 분법적 신분 체계가 확고히 정착되었으며 양인의 신분적 제일성이 재래되었다. 양․천 신분제도는 이러한 조선의 제도적 안정의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확립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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