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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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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민족주의 세력 내 분열
· 3 ·1운동 이후, 민중의 정치적 자각과 진출이 높아지면서 민족운동이
국내외에 전개
· 이에 일제는 문화정치 라는 기만적인 개량정책으로 민족독립운동의 분열과 약화를 모색
(특히 실력양성운동을 일제 지배하에 자치를 이루는 것이 목표인 자치운동으로 전환시키려 함)
· 1925년 1월에 발표된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이 자치운동의 출발을 알림
·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가 총독부에 포섭되어 친일파로 전락
→실력양성을 통해 독립을 꾀하던 민족주의자들 중, 일부는 일제와 협력을 통한 실력양성을(*타협적 민족주의) , 다른 일부는 일제와의 협력을 거부한 실력양성 운동(*비타협적 민족주의)을 전개
국내 독립운동의 분화
신간회 창립배경
‘자치론’의 대두, 민족세력의 분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 사회주의자
1925년 이후 좌우합작의 움직임
당시, 사회주의 진영
· 초기의 계급중심적 사고를 극복, ‘타협적’ 민족운동과 ‘혁명적’ 민족운동을 구분하기 시작
· 국공 합작운동으로 국민당 쪽과 연합하여,
성공적인 반 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것에 고무됨
· 통일 조직 건설의 분위기가 무르익음
· 민족협동전선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
1926년 사회주의자와 비타협민족운동과의 협력이
조직적으로 모색됨
1926년, 북경 지방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조직
민족 유일당 운동 국내외로 확산
- 국내: 신간회 결성
- 중국: 여러 지역에서 ‘유일당 촉성회’ 발족
조선민흥회 결성, 정우회선언
국내외에, 분열된 운동단체를 통합하여 독립 운동의 힘을 키우자는 운동발생
조선 민흥회 결성
정우회 선언(1926) 을 계기로,
-민족협동전선을 만들어 나가는 행동 구체화
-1927년 1월 19일, 27명이 모여
회장에 이상재, 부회장에 홍명희를 선출하고 강령을 채택함
으로, 신간회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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