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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색-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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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安在鴻)
1. 생애와 활동
1891년 12월 30일 경기도 진위군 고덕면 두릉리에서 안윤섭의 8남매 중 2남으로 출생
대원군의 문객이었던 조부의 근왕사상과 황성신문, 독립신문의 독자인 부친의 개화상의 영향
신채호와의 만남(후에 큰 영향을 받음)
일본과 조선의 병합 후 이상재의 권고로 일본 유학을 간 민세는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에 입학
20대의 민세의 활동
중국여행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낭만적인 공상을 대신해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전환
경제적 토대가 없는 해외운동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국내에서 활동할 것을 결심
교육계몽활동, 민족 자본 육성을 목표로 활동
3.1운동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청년외교단이라는 비밀결사에 가입하여 단체의 총무가 되었지만 옥사를 치름
30대의 민세의 활동
언론가·민족운동가로서 만개
조선일보는 민족적이고 계몽적인 주장을 폈고 일제에 비판적인 글을 발표하여 몇 차례 필화사건을 겪음.
1926년경에 일본과 야합한 민족주의자들의 자치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자 및 조선공산당과 함께 신간회를 결성하는데 큰 역할
1929년 광주학생사건 진상보고 민중대회 사건으로 구속
1930년대 민세의 활동
국내적으로 신간회 해소 이후 사회주의 노선과 민족주의 노선의 대립, 일제 파시즘 통치체제의 강화 등으로 민족해방운동의 조건은 더욱 악화
신간회를 대체하는 표현단체의 재건을 시도하지만 실패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하지만 공금유용혐의로 구속되어 옥중에서 사장직을 사임→민족해방운동이나 언론활동의 일선에 설 수 없게 되었음
국내에서 합법적 영역에서 활동했던 민세는 차선책으로 문화운동, 즉 조선학운동 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
1930년대 민세의 활동
위당 정인보와 함께 여유당전서 를 교열 간행하는 한편 한국고대사 연구에 몰입 → 고대사 연구
민족혁명당의 김원봉에게 군관학교 학생을 소개한 혐의로,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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