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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재 황윤석의 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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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재 황윤석의 시 세계
[목차]
Ⅰ. 서론
Ⅱ. 이재 황윤석의 생애
Ⅲ. 이재 황윤석의 시 세계
1.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재 황윤석의 학문에 대한 열의
2.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재 황윤석의 애민사상
Ⅳ. 이재 황윤석의 시의 문학사적 의의
Ⅴ.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18세기 후반을 살던 이재 황윤석은 호남의 대표적인 박물학자이자 실학자였다. 그는 학통연원을 중시하였고, 주자를 존신하였으며, 경학을 중시한 인물이다. 그는 문학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성리학적 규범 속에서의 보편적인 문학관을 고수하였는데, 학문적으로 이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스승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은 이재가 시에 대해서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여기에 대해 공부한 게 없으니,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대개 후대에는 사장(詞章)과 학문이 둘이 되었고, 이것은 본디 어떻게 해볼 수 없네. 그러나 학문이 원숙하다면 그 문장 또한 좋은 법이지. 이를테면 옛사람의 입언(立言)과 수훈(垂訓)이 어찌 한 번인들 반드시 이런 문장을 짓겠다고 마음먹었겠는가 그 문장이 저절로 그러했던 것이지. 비록 이런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해도 진실로 그렇게 되는 연유는 몰라서는 안 되네. 자네도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마음 두지 말고, 기필코 용감하게 나아가 착실(着實)하고 절근(切近)한 곳에 힘써야 할 것일세.
이 대답 이외에도, 김원행은 이재에게 학문에 있어서 곁가지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던가,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고 군자유(君子儒)가 될 것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김원행은 이재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을 첫째 덕목으로 강조하였고 13년간 스승 김원행을 모신 이재로서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스승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을 것이다.
Ⅱ. 이재 황윤석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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