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사] 이봉창 조사 보고서
목 차
1. 머리말
2. 9차례에 걸친 신문과정과 일제의 날조
3. 틀에 짜여진 재판 진행과 진실의 왜곡
4. 맺음말
1. 머리말
1932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일본왕을 겨냥한, 이봉창 투탄의거의 연구는 1994년 신문조서 및 재판 기록이 발굴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일제의 ‘대역사건’인 이봉창의사의 의거는 60여년 동안 일체의 재판 관련 기록이 공개되지 않던 상황에서, 그동안 적지 않은 오해와 왜곡이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대역사건’은 최고 법원인 대심원에서만 처리했으며,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일제 패망 후 1947년 ‘대역죄’가 폐지되면서, 대심원의 후신인 최고재판소가 ‘인권존중’의 차원에서 사건 관계자들의 자손 내지 혈육에게 재판 기록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손과 혈육이 없던 관계로, 이봉창의사의 기록은 열람이 허락되지 않았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이 혈육이 아니더라도, ‘정신적 내지 사상적 계승자’에게 그것을 공개할 것을 주장했고, 최고재판소가 전원회의를 통해 이를 받아들여 1994년 이봉창의사 의거의 재판기록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신문조서 및 재판 기록을 필사한 최서면 원장이 이를 1994년 국내에 소개했고, 2004년에는 단국대학교 동양연구소가 이봉창의사의 신문,재판기록을 영인·번역해 자료집으로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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