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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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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중세의 시작
12세기 중엽에 이르자, 천황가와 섭관가 사이에는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된다. 천황가에서는 고시라카와 천황과 스토쿠 상황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섭관가에서는 관백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와 동생 요리나가가 대립하였다. 드디어 1156년에 도바 상황이 사망하자,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각기 두 편으로 나뉘어 전투를 시작하였다. 고시라카와 천황은 미나모토노 요시모토와 다이라노 기요모리를 끌어들여 스토쿠 천황파를 무너뜨렸다. 이를 호겐의 난 이라고 한다. 이 전란은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무사들이 큰 힘을 발휘하였으므로, 이후 무사들이 세력 신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일본 학계에서는 호겐의 난을 계기로 일본의 고대가 종식되고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겐의 난 이후, 미나모토노 요시모토와 다니라노 기요모리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그 결과 1159년 두 세력 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이 싸움에서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미나모토노 요시모토를 깨고 무사 중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를 헤이지의 난 이라고 한다. 이후, 중앙 정계로 진출한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고시라카와 천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사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무사로서는 최초로 조정의 최고 지위인 태정대신에 올랐다. 기요모리는 일족을 조정의 고위 관직에 임명하고, 20여 개의 지행국과 500여 개의 장원을 획득하고, 일족과 부하인 게닌들을 국사와 장관에 임명하였다. 또, 기요모리는 현재의 고베항인 오와다노 도마리를 수리하고, 세토내해의 항로를 정비하여 일·송 무역에도 주력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천황과 결혼시키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즉위하여 안토쿠 천황이 되자, 외척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고시라카와 상황의 황자였던 모치히토왕이 이에 반발하여, 1180년 5월 미나모토노 요리마사를 규합하여 군대를 일으킨다. 이때부터 1185년 3월까지 겐지 무사단과 헤이시 무사단 사이에서 전개된 내전을 겐페이 전투 라고 한다.
겐페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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