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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가 보고싶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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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일방 이후 어느 매체고 할것 없이 일본대중문화의 개방에 대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보여주기에 급급할 뿐 수용자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충분한 거리는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한 점에서 본서는 남다르다.
아니메처럼 익숙한 것도 드물다. 아톰과 철인28호를 비롯, 알프스 소녀 하이디․플란다스의 개․미래소년 코난 그리고 최근작 신세기 에반겔리온 등 일본 애니메이션을 일컫는 아니메는 공중파와 케이블TV에서 최신 작품이 방영되고 있음은 물론 최신 극장판도 PC통신의 불법 복제 창고에서 어렵잖게 구해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직도 아니메에 대한 이해는 그 익숙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실 어디까지가 일본 것인지 구분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지형도를 그려낸 아니메가 보고싶다‘는 그 한계격파에 한 몫을 할 만하다. 게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 그 첫자락을 만나보던 세계를 제패한 아니메의 힘을 볼 수 있기에 그 필요성은 더욱 높아 보인다.
일본애니메이션의 국제어인 「재패니메이션」은 경멸적 뉘앙스를 담은 미국식 용어다. 미국 언론은 보수적인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층실한 이들은 경직된 움직임과 파괴적인 주제, TV용 수십부작 「싸구려」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들의 예술적 애니메이션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 싫었던 것이다. 이렇듯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은 용어. 재패니메이션은 일본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의 증가와 더불어 확대 재생산되어 버젓이 일본산 애니메이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작가․작품․제작사의 측면에서 본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저자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재패니메이션」 대신 일본인들 스스로 부르는 「아니메」라는 용어로 선택했다.「재패니메이션」이 특수성만 강조된 용어라면 「아니메」는 보편성의 바다에 도달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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