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지은이
김승옥
줄거리
아내의 권유로 무진으로 떠나는 나는, 버스 뒷좌석에 앉은 농사 관계의 사찰원인 듯한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무 진에는 이렇다 할 명산물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무진의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와 바람을 간절히 부 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야말로, 무진의 명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무진행은 서울의 실패로부터 도망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새로운 용기나 새로 운 계획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무진에 그냥 처박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나의 무진에 대한 연상은 어둡던 청년 시절, 6 25 사변으로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었을 때, 홀어머니에 의해 의용군의 징 발도, 국군의 징발도 피한 체로 골방에 쳐박혀 있던 기억이다.
이웃 젊은이의 전사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의 어머니는 골방에 쳐박혀 있는 나를 대할 때면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친구로부터 오는 군사 우편은 모두 찢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모멸하여 오욕을 견디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산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경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청산 가리로 자살했다는 얘기 를 듣고, 나는 상쾌한 수면제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인숙과 만난 나는 방죽으로 가는데, 하인숙은 서울에 데려다 달라고 졸라댄다. 그날 밤 나는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 는데, 그저 불안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는데, 급상경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전보를 받은나는 무진에서의 행동과 생각을 들켜 버린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들, 술집 여자의 자살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한다.
옛날의 나의 모습과 같은 하인숙에게 나의 편지를 쓴다. 사랑한다고, 무진을 떠나 내게 오라고, 하지만 몇 번을 읽어 본 후 찢 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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