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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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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사 탐험_한국적 근대 만들기
요즘 진행 중인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작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친일파가 친미파․반공우파로 변모해 기득권을 계속 누려온 우리 현실에서 ■■친일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집단의식을 떠나지 않고 우리들을 괴롭히며 고뇌하게 하고 있다. 역사학 등에서도 관련 부분을 ■■건드리기■■위해선 많이 망설이게 되는 등 학문의 이론적 탐구에서도 한 번도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는 것이 ■■친일문제■■이다.
현실이 친일파에 계속 너그러웠던 만큼〔즉 현실의 부(富)와 상징적․실제적 권력의 논리로 우리가 친일의 현상을 너그럽게 대하게끔 강요를 받은 만큼〕적어도 지상(紙上)에서라도 단죄할 것은 단죄하고, 판단 내려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충동이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현실생활에서 친일 현상에 대한 우리의 망각과 ■■자의반 타의반■■식으로 보이는 ■■너그러움■■은 거의 무한하다. 『동아일보』의 김가와 『조선일보』의 방가의 일제 때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접한 수백만 명의 대한민국 서민 중에서, 이를 이유로 그 신문들에 대한 구독을 끊거나, 적어도 반성을 요구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서울대의 상당수 원로 교수와 연세대의 저명한 언더우드(Underwood)의 ■■왕조(王朝)■■, 고려대의 인촌(仁村) 일가가 신사참배를 열성적으로 받들고 학생에게도 강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우리가 과연 ■■서연고(소위 ■■SKY■■라 부르는 대학) 입학을 자의로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이인직, 이광수나 주요한의 친일 행적에 대해 별다른 이의가 없지만, 언제 그 작품들이 소위 ■■국문(또 하나의 일제시대식 표현)■■의 ■■정전(正典)■■에서 빠진 적이 있었는가 현실 속에서는 1945년 이전에 이미 굳어진 권력관계가 지금도 철저하게 유지되는 만큼 적어도 지상(紙上)에서 필주(筆誅)를 가하고자 하는 충동은 십분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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