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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본질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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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본질에 대한 재검토가 갖는 함의
기자를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끊이질 않았던 자본가들의 노조지도자에 대한 테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폴 뉴먼의 실종’이라는 영화의 진행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것이다.
기자의 오보는 흔한 일이고 그 피해사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은 좋다고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해자는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음모나, 이기적인 성취욕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이고 피해자는 그 아버지가 실제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자행한 바 있고 현재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지위에 있는 소기업인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 그런 기업인들에 의한 테러가 빈번했다는 역사적 정황도 있다. 이쯤되면 정의로운 기자像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이 영화가 실제 사실을 다루었는가 아니면 기자들의 폭로로부터 기업인들을 방어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것이다. 기자들의 폭로에 시달린 자본가로서는 충분히 그런 영화를 후원할 동기도 있고 또 능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의 부재(Absence of malice)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악의없이도 언론이 큰 상처를 개인에게 남길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상황설정은 악의가 없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 영화는 권력층의 비리를 파헤쳐 사회정의를 바로잡으려는 기자의 노력이 오히려 정보원의 의도나 취재상의 허점 때문에 결정적인 오보를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오보가 정보원의 고의적인 의도와 기자의 선입견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그리고 있다. 기자의 뉴스는 결국 객관적이지 못했고 사실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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