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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맹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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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맹아론’
중국의 역사학계에서는 1950년대 중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맹아’론이 명. 청시대역사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오고 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서양학자들의 ‘중국사회정체론’을 비판, 극복하고 중공정권성립의 ‘혁명적 성격,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중국사에도 세계사의 법칙성이 존재함을 밝히려는 목적이 있었다. ’자본주의 맹아‘의 대표적인 지표는 명 중기 이후의 생산력의 발전과 은의 대대적인 유통과 함께 나타난 상품경제의 발전이었다.
중국의 명말. 청초시기에는, 명조에서 청조로의 왕조교체 외에도 상품경제가 대대적으로 발전하였고 지주제의 변화, 이갑제질서의 해체, 부역제도의 개혁, 전국적인 민중운동, 그리고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총체적인 표현으로서의 사상의 다양화 및 경제실용학의 발달등이 지적되고 있는 터이다. 중국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은 이러한 면도 모두 고려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 역사학계에서 ‘자본주의 맹아’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이었다. 1930년댑터 중국에서도 ‘중국사회이 성격’ 논전이 일어났다. 중공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상웝은 명, 청시대에 동남 연해지방 일대에서 농업생산과 수공업생산방식 중에 자본주의적인 것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후외로도 17세기의 중국사회에 이미 자본주의적 ‘유아’와 ‘시민운동’이 존재하였으며, 당시의 계몽사상은 이러한 경제발전과 사회조건의 반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적인 ‘맹아’ 토론으로 발전된 것은 1954년부터인데, 이의 직접 계기가 된 것은 다음 두 가지였다. 하나는 1954년에 나타난 <홍루몽>논쟁이 그것이다. 이는 문학자들이 <홍루몽>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그 방면의 태두인 평백교수의 업적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또하나는 “중국 봉건사회 내의 상품경제의 발전은 이미 자본주의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었다. 50년대 중기로부터 60년대 중기에 이르는 시기는 ‘자본주의 맹아’ 토론이 극성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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