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삶과 한시
Ⅰ. 머리말
- 김시습이라는 인물에 대해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행한 몇 가지 기행과 소설 《금오신화》를 이야기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결코 한두 줄로 요약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그 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인생을 형성하고 그의 사상을 바깥에서부터 규정하였다.
우리는 심경호의《김시습 평전》을 바탕으로 김시습의 방랑과 이 과정에서 쓰인 의미 깊은 한시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삶과 한시
1. 오세동자(五世童子)의 탄생
- 1435년, 김시습은 서울의 성균관 북쪽 반궁리에서 태어났다.
- 부친은 김일성이고 모친은 울진 장씨이다.
- 시습이라는 이름은 이웃에 살던 최치운이 《논어》〈학이〉편의 맨 처음에 나오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서 따와 붙여주었다.
-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 태어난 지 여덟 달만에 글을 알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동이었던 그는, 스승 최치운과 조수의 선전으로 서울에 널리 알려졌다.
- 세종도 김시습에 대한 소문을 듣고 승정원으로 불렀고 승지를 통해 시험하였다. 승지의 거듭된 시험에도 김시습은 시구를 척척 지었다. 또한 중사가 휘호(揮毫)1)1) 붓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이르는 말.
를 해보라고 권하자, 김시습은 글씨를 써내려갔다. 그 글씨는 마치 용이 날듯 한 기세였다.
- 이를 전해들은 세종은 김시습의 천재성에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지하였다.
내가 친히 인견하고 싶지만 관례에 없던 일이어서 사람들이 듣고 놀랄까봐 두렵다. 집으로 돌려보내어 그 아이의 재주를 함부로 드러나게 하지 말고, 지극히 정성스레 가르쳐서 키우도록 하라. 성장하여 학문을 성취한 뒤에 크게 쓰고자 하노라.2)2) 심경호,『김시습 평전』, 돌베개, 2003,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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