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철학
13세기 대학이란 것이 설립되고, 유럽은 이제야 제대로 학문을 할 만한 여건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그 대학의 중심이 바로 지금의 프랑스 파리 이다. 사실 이미 이슬람은 여러 분과학문으로 나누어진 고등 교육 기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즉 그들은 이미 대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그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을 시작한다. 이렇게 대학이 성립되고, 학문의 터전이 마련되었다면, 이제 논의할 만한 텍스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과제는 번역이었다. 단지 논리학자이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작들이 이미 상당한 학문적 발전을 이룬 이슬람에서 유입되자. 파리에서는 더 이상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지 논리자만은 아니게 되었고, 그는 형이상학자요, 자연철학자였다. 이렇게 이슬람에서 들어온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만은 아니였다. 이의 훌륭한 연구가인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 등도 함께 유입되고, 이제 이들은 서구 학문계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유입된 학문들은 기존의 교부들이 이루어놓은 것보다 당시 학자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매우 논리적이고, 풍부한 과학적 논의는 당시 학자들에게는 단지 성서주해나 신플라톤식의 사유에서 주지 못한 다양하고 폭넓은 사고의 세계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 사회는 이러한 새로운 학문 즉 인간 지성의 진리에 대응하여 자신들이 오랜 시간 상식으로 받아드린 계시의 진리를 수호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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