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학계에서 가장 곤란한 문제 중의 하나는 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의 애매함이다. 예를 들어 예배도중에 사도신경이 고백될 때 대개의 예배자들이 자신의 신앙고백 내용을 믿건 안 믿건 그 내용은 문자적으로 사실이다.
고백한 내용을 믿느냐고 질문하면 자신의 신앙대로 예, 아니오를 명백히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현대 신학자들에게 묻는다면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가 없다.
예수가 처녀몸에 잉태된 것이나 죽은 뒤 사흘 만에 다시 육체로 부활한 것을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예수가 처녀 몸에 잉태된 것이나 죽은 뒤 사흘만에 다시 육체로 부활한 것을 믿는다고 고백은 해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말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의미의 설명을 듣고 나도 여전히 예 인지 아니오 인지 분명치가 않게 된다.
2. 현대 신학의 고민
과거 어느때보다 현대 신학자들에게 고민거리가 있다면 현대 과학문명과 전통적인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정통신학에서는 어떻게 하던지 신앙에서 출발해서 문화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바른 지침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별로 불신앙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다. 물론 그것이 신앙의 원리와 맡지 않으니까 당연하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방법과 자연 과학적인 입장에 서서 신앙을 설명해 보려고 시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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