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복잡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책을 독특하게 만드는 핵심 개념이나 요소인 공통의 추상 기계를 규명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이들은 책의 추상 기계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쇄 문화’라고 답한다. 여기서 인쇄 문화란 그동안 문명 세계의 많은 부분을 규정해온 것으로 대량생산된 인쇄의 역사와 유산을 일컫는다. 많은 이들이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는 인쇄 기술이며,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한 이후 수 세기 동안 이런 인쇄 기술을 바탕으로 문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은 기술 체계로서 책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물리적 형태만을 특권화하는 잘못된 해석 방법이다.
책에 대한 정확한 정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즉 ‘책이란 사물’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해진 형태의 책으로 영원히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인쇄물로서 종이 책이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쇄 책이 지닌 한계 때문에 책의 미래 가능성들이 꽁꽁 묶여 있다. 책은 단지 여러 장의 종이를 한데 묶어 한 권으로 만든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가 돼야 한다. 책의 중요성을 떠나 컴퓨터로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저장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은 반드시 종이에 인쇄해 배포하는 것, 다시 말하면 인쇄 책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결국 책을 반드시 지금의 제본 형태로 출판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