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목표는 애니미즘을 몰아내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서 공포를 제거하고 인간을 주인으로 확립하고자 한다. 계몽은 세계를 탈주술화/탈마법화하고, 탈신화화한다. 이를 위해 계몽은 유동하는 외적 세계를 고정적인 것으로 만든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들을 규정된 보편적인 類로 포섭, 동일화한다.
신화와 계몽은 그것들의 뿌리를 같은 기본적 욕구들--생존, 자기보존, 불안--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르다. 후자는 사고와 현실 간의 근본적 구별을 정립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것의 대상 영역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개념들의 주권성’이란 우월한 지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과학에서 자연지배는 자연에 있는 인과적 결합과 규칙성들에 기초를 둔 과학적 법칙들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계몽의 개념적 언어에 의해 미메시스와 신화는 추방된다. 신화는 모든 현상들을 의인화하는 표상세계를 구축했고, 주체와 객체를 엄격하게 분리하지는 않았다. 체험의 주체와 사건의 객체를 유사성의 원리에 의해 연관지음으로써 양자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를 만든다. 그런데 과학을 통해 인식주체와 인식되는 객체 사이의 균열이 생기고 심화된다. 신화, 마술이 성행하는 사회에서 주체는 객체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계몽은 주체와 객체를 근본적으로 분리한다. 계몽이 전개되면서 외적 세계는 조종가능한 양화된 객체들로 환원되고 이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주체는 제2의 자연(‘문명적으로 구조화되고 미리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역사)에 의해 점점 더 억압되고 지배당한다.
신화가 실증주의와 경험주의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산업테크놀로지에 의해 주술의 맥락에 매인 실천들로 대체되어 사회적인 것이 사물화된다. 아도르노는 이를 ‘가짜 총체’라고 부른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점증하는 통제는 보다 더 큰 압박을 초래한다. 생산력의 확장은 해방된 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해방의 잠재력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배의 도구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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